엘리와 제임이 남매의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게으르게 잡생각만 하며 사는 중.
by 금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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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2/17
"내일 점심 먹을 수 있어?"
이틀 전에 카톡으로 대화할 때만 해도 별다른 말 없던 놈이 갑자기 보내온 메시지. 2박 4일로 런던 출장 왔단다.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혹시 못 만나면 아쉬우니까 얘기를 미리 안 했단다. 아 의뭉한 놈. 나 이미 점심 약속 있는데? 그래도 다행히 얘 미팅도 내 점심 약속도 런던 씨티에서 잡혀 있는 거라, 아침에 얘 비지니스 미팅 하는데 나도 껴서 간신히 얼굴은 봤다 (...). 미팅하는 사람들을 나한테 소개 시켜 주려는 속셈도 있는 것 같았는데(의뭉한 놈), 야. 니가 나 취직 시켜주길 내가 일년 반동안 기다리다 못해 이미 내가 스스로 취직했어. 노 땡큐. 미팅이 끝나고 차 잠깐 마시면서 너 이제 런던 없어서 너무 아쉽다. 옛날에 좀 자주 놀걸! 이라고 말하니 기가 차다는 듯이 내가 그렇게 맨날 술마시자고 했잖아. 그러면 꼭 넌 애들 핑계 댔잖아 라며 핀잔을 준다. 그러게, 그 책임감이 뭐라고. 지키지 못했을 때 내가 찾아올 죄책감이 너무 두려워서.  

2000년대 초였나, 어느 화창한 봄날 부모님과 교외 유적지에 갔더랬다. 유적지 안에 있는 허술한 경양식점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는데, 30대 후반의 한 커플이 눈에 띄었다. 여자 눈에 든 시퍼런 멍이 검은 선글라스 바깥쪽으로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실내에서 선글라스라니, 차라리 쓰지 않았다면 덜 눈에 띄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큰 멍이었다. 자리가 없어 우리는 바로 밖으로 나왔다. 부모님 중 한 분이 말했다. 아까 그 여자, 남자가 두드려 패고 데리고 나와서 밥 사주는 거야. 원래 와이프 때리는 남자들이 저래. 때리고 미안하니까 잘 해주는 거지. 그리고 또 때리고. 여자 때리는 놈은 그냥 때리는 놈인 줄 알았는데, 중간 중간 저런 짓도 한단 말인가? 변화를 두려워하며 현실을 부정하는 매맞는 아내에겐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다. 그 사람 그런 사람 아니에요. 욱해서 때릴때가 있긴 하지만 저를 정말 사랑하고 평소에는 잘 해줘요. 자기도 얼마나 미안해하는데요. 라고 변명할 거리를 준다. 자존감이란 그 중요성에 비해 존재감은 작은 편이라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나브로 떨어진다. 육체적으로 폭력적인 관계에서도 선뜻 빠져나오지 못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 양상이 훨씬 다양한 정신적으로 폭력적인 관계에서는 어떻겠는가. 상대가 자신에게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그 결과로 자존감은 떨어지고, 결국은 그 관계에 갇혀 정신적 다구리를 지속적으로 당하는 비극적인 상황이 초래된다. 그리고 걱정하는 주변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변명을 늘어놓는다.내 책임도 있어. 가끔 그럴 때도 있는거지. 우리 사이 좋을 때는 되게 좋아. 그 사람은 나를 사랑해. 자기 객관화는 관계에서 빠져나왔을 때만 가능하니까. 그제서야 여자는 알겠지. 자신이 얼마나 믿고 싶은 것만 믿었는지.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의 폭력을 묵인하며 자신을 설득해왔는지. 얼마나 죄없는 스스로를 탓해왔는지. 이쯤 되면 나 자신이 스스로의 적이다. 뭐 그때 그 경양식점 멍든 여자분 다른데서 넘어져서 멍든거고 지금 행복하게 그 남자분이랑 잘 살고 계시면 오해해서 죄송. 

겨울왕국만 보면 눈물이 줄줄 나는데, 엘사가 그동안 모든이에게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얼마나 스스로를 억누르고 마음 터 놓을 데 없이 힘들고 외로웠는지 짐작이 갈 것 같아서다. 뭐 나 스스로 그런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본 적은 없지만 그냥 내가 엘사였으면 되게 서러웠을 거 같다. 사실 그렇게 극단까지 안 가도 따지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엘사처럼 책임감과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본격적으로 찾아올 것만 같은 죄책감을 가지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며 산다. 삶의 원동력이 될 만한 더 좋은 가치가 그렇게 없단 말인가. 서글픈 현실. 그래서 엘사가 갑자기 산 속에 멋진 얼음 성을 짓고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다 놓아버려!! 하고 노래 부르면 나도 약간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그래 잘한다!! 이런 기분이 되는데. 그냥 주변 상황에 맞추자면 한도 끝도 없고 그렇다고 나만 참으면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느슨해도 주변은 왠만하면 잘 돌아간다. 내가 집을 비우는 것도 아니고 애들도 잘 컸을텐데 난 애들을 방치한다는 죄책감에 왜 술을 더 자주 마시지 않았나. 이건 내가 깨달은 진리인데, 엄마가 애들 어릴 때 뭘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애들이 180도 다른 어른으로 클 수 있다는 건 부모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거다. 애들도 애들만의 인격이 있고 관심사가 있고 결국은 부모가 물려준 유전자에 크게 기반하고 부모의 인격의 영향을 받겠지만. 이를테면 부모가 저밖에 모르면 아무리 애들한테 다른 사람 배려하라고 가르쳐도 애들도 남들이 봤을땐 저밖에 모르는 인간으로 클 확률이 높다.뭐 가끔 어떻게 저런 애가 저런 부모에게 나왔지 하는 사람들도 보지만... 그러니까 Be yourself. Mainly because you cannot lie forever. 
by 금복주 | 2017/12/15 07:50 | 트랙백 | 덧글(0) | ▲ T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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